당신의 아픔이 나의 아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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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생명사랑기금 작성일19-02-19 12:00 조회2,53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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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기금으로 김광수 목사님의 치료비를 지원했습니다. 김광수 목사님은 병원비가 엄두가 나질 않아 치료받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류미자 전도사님은 그런 김목사님을 돕고자 작은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연이 샘병원에게 알려져, 생명사랑기금에서도 김목사님의 치료비를 지원했습니다.
김광수 목사님 이야기
저에게 남은 건 기도 밖에 없습니다.
김광수 목사님은 중국인으로 한국에 와보니 조선족들이 힘들게 번 돈을 하루 만에 탕진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들을 돕고자 선교사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의 이끌림으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김목사님은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중에 온몸을 떨고 있는 알코올중독자를 보살피기도 하고, 오갈 곳 없는 모녀를 교회에 재워주는 등 낮은 자세로 섬겼지만 재정적으로는 힘들어졌습니다. 건물 맨 위층에 위치한 교회는 문풍지 하나에 날카로운 겨울바람을 막아내야 했고 난방비가 부담스러워 판넬 위에 텐트를 치고 잤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교인 5~6명, 많을 때는 13명으로 개척교회를 꾸려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작스럽게 배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궤양성 대장염을 진단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약을 열심히 먹었어요. 그런데 그 약이 간을 해친다고 하더라구요. 작은 병원에서 간 검사를 받았는데 큰 병원을 가라고 했어요. 이번엔 C형 간염..... 2주치 약을 마지막으로 받고 이제 병원을 갈 수 없었습니다. 약값은 고사하고 진료비도 낼 자신이 없었어요. 저에게 이제 남은 건 기도 밖에 없었습니다.”
류미자 전도사님 이야기
비록 열매가 보이지 않더라도
류미자 전도사님은 항상 바쁩니다. 외국인 근로자 쉼터인 선교비전센터를 이용 하는 사람들을 위해 청소, 빨래는 기본이고, 잠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낮에는 일자리 알선, 복잡한 비자 문제에 조언을 해줍니다. 돈을 못 받으면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골몰하는 것도 류전도사님의몫입니다.
류전도사님은 중국에서 목회 활동을 했습니다.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딱 3년만 한국에서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벌써 10년이 넘게 한국에 있습니다.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그저 하나님께 쓰임만 받고 있는 것 뿐이예요”
류전도사님은 10년 동안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타인을 공감하며 그들을 돕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고 합니다.
“저는 오로지 전도만 계속하죠. 제가 하는 일은 어쩌면 결실이 보는 일이 아닙니다. 열심히 전도하지만 그분들은 믿을까 싶으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나세요. 이런 일의 반복입니다.”
하지만 류전도사님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내 직업은 전도하고, 공부하는 일의 반복입니다. 열매가 보이 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으려고 노력해요. 간혹 안 믿던 사람 이 예수를 믿게 되면, 힘들었던 모든 것이 사라져요. 뭔가 크게 이루어 주진 않지만 잔잔하게 하나님이 이루어 주고 있죠”
△ 기금팀 김정현 팀장, 류미자 전도사님, 김광수 목사님 (왼쪽부터)
당신의 아픔이, 나의 아픔입니다.
김목사님과 류전도사님의 인연은 2012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류전도사님이 중국비전센터를 꾸리고 있었고, 김목사님은 잠깐 그 쉼터에 묵게 되었습니다. 오고 갈곳 없는 김목사님은 바람을 막고 누워서 잘 수 있는 것 만으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 사이 류전도사님은 백석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 했습니다. 설문조사차 다시 김목사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류전도사님은 몇 년 만에 만나는 반가움도 잠시, 김목님의 낯빛이 심상치 않아보였습니다. 얼굴은 하얗고, 핏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안부도 묻기도 전에 어디 아프냐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돈이 없어 병원을 못가고 약국에서 약만 사먹고 있어요”
집안을 살펴 보니 빈 건강보조제 병만 쌓여 있었습니다. 류전도사님은 카드라도 긁어서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지만, 김목사님의 생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날 류전도사님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딸을 통해 만든 자신의 신용카드로라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큰 병이면 어떻게 하지, 온갖 걱정과 염려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외국인이 일을 하다가 부상을 입으면 현장에서 합의를 보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목사님은 목회 자다 보니 합의할 곳도 없었습니다.
류전도사님은 후원 자라도 모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마다 지인에게 전화해 상황을 알리고, 얼마를 보태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보태고자 같은 신학동기생 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신학교에 다니고 있던 동기 샘병원 이대희 이사장님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부하는 동료 중 의사 선생님을 보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G샘병원에 김목사님과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김목사님은 이런 상황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병원비가 무서워 전혀 갈 생각을 안했는데, 병원안에 저 같은 사람을 도와준다는게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저도 기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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