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자인터뷰] 더욱 큰 사랑을 실천하는, 김산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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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생명사랑기금 작성일17-11-03 14:57 조회3,29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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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아내를 사랑한 휴머니스트 김산호씨,
더욱 큰 생명사랑을 실천하다
생명사랑기금에 도움을 주시는 분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기부를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전인치유, 호스피스 등의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감사를 표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도움의 손길을 주실 때에는 더욱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고마운 한 분을 만나봤습니다. 암으로 아내를 먼저 하나님 곁으로 보내신 김산호씨가 그 주인공이십니다.
아이디어 상금으로 받은 것을 생명사랑기금에 기부
저는 안양시청 정보통신 분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가 폐암으로 사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샘병원에서 정성과 사랑이 충만한 의료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죽음을 가로막지는 못했지만 아내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며 소중한 시간을 정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샘병원 관계자분들께 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시청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입니다. 지난 해 연말에는 제 아이디어로 17억 원의 예산을 줄인 공로로 상금을 탔고, 이번에도 역시 아이디어로 상금을 타게되어 선한 일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아내의 폐암
제 아내는 평소에 등산도 자주하고 여행도 좋아할 만큼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2006년도에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정밀 건강 검진을 하게 되면서 폐암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국립암센터에서는 3개월 에서 길어봤자 3년이라는 진단을 받아 암 절제 수술을 했습니다. 처형까지 동원하여 각종 식이요법 등을 행하는 가운데 다행히 5년 이상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랬지만 그해 가을 등산을 다녀온 아내가 머리가 아프다며 쓰러졌습니다. 검사해 보니 암이 머리로 전
이되어 주먹크기만 한 것이 3개나 발견되었습니다. 분당 차병원에서 수술을 한 후, 방사선 후유증으로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서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온 몸이 마비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2~3달 간호를 열심히 하니까 손부터 반응이 오면서 의식도 호전이 되었고 말도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내 손을 꽉 잡더니, 너무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검사했더니 뇌출혈이 왔고 이로부터 마지막까지 움직임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시 찾아온 패혈증 그리고 밥 한 끼
한림대 병원에서 폐혈증이 와서 사실상 죽음진단을 받았습니다. 처형이 그냥 보내주자고 하는데 제가 도저히 산소 호흡기를 뗄 수 가 없더군요. 그냥 보낼 수가 없어 하루 3~4번을 면회하면서 입안소독 등을 제가 도맡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폐혈증이 사라져 일반 병실로 오게 되었고, 호흡도 조금 개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샘병원으로 병원을 옮겼습니다. 지샘병원은 다른 병원에서 느껴보지 못할 정도로 굉장히 정성스레 아내를 돌봐 주셨습니다. 죽음 진
단을 받았던 아내는 여기서 근 2년을 보냈습니다. 저는 아내의 뇌수술 이후부터 간호일기를 써 오면서 아내의 상태, 맥박, 산소, 피검사 결과 등 기록했고 의사와 긴밀히 협조관계 형성
하면서 제가 직접 간호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까지 피부도 깨끗했고, 오래 누워 있었는데도 욕창도 하나 없었습니다. 제가 매일 오일 등을 발라주며 정성을 다했지만 마지막 폐혈증이 또 찾아 왔습니다. 본인도 힘들고 가족들도 지치고 해서 이제는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이제 가야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연습하고 생각했던 것들인데도 막상닥치니 저도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아내에게 마지막 밥 한 끼 못준 것이 아직도 죄책감처럼 따라 붙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밥한 끼 때문에 더 살고 덜 사는 것이 아니라며 위로 했지만 저는 그 밥 한 끼 못 준 게 지금까지 미안합니다.
나의 첫사랑 그녀
아내는 고2 때 만난 제 첫사랑입니다. 살면서 여행 간 1주일을 빼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아내를 보낸 이후 지금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추모공원에 갑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고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신혼을 사글세방에서 시작했는데, 반 지하 등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1남1녀를 두며 나름 행복했습니다. 아내는 배움에 갈증이 있어 대학에 도전하여 도서관학과 졸업한 후 도서관에서 열심히 꿈을 만들어 가는 중에 암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교에 간 것이 허사가 된 것 같아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아내는 감사해 했습니다. 저는 아내를 가능하면 즐겁게 해 주려고 웃음치료, 동창회, 여행 등에 함께 했고 아내의 의식이 좋아졌을 때는 좋았던 추억의 사진을 계속 보여주었습니다. 사진을 통해 인생을 정리해 주고 싶었습니다. 말은 못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을 사진으로 음미하게 해 주어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사랑의 통로가 되어 아내를 간호하며 병원에 오래있어 보니 한 사람 아픈 게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가보면 웃음꽃이 없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쟁을 모두 치르고 있고, 먹는 것도 부실합니다. 그걸 알기에 환자들뿐만 아니라 봉사자들에게도 공기청정기 등 여러 장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호스피스 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도 시작 하려고 합니다. 몇 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쓴 간호일지의 작성법과 중요성을 환자 가족과 나누고 싶습니다. 아내에게 해주던 마사지도 다른 환자분들에게 해주면 아내가 좋아 할 것 같습니다.
김산호님은 아내의 이름(이종숙 미카엘라)으로 작년에 일백만원을 기부 하시고 올해 두 번째 기부를 하셨습니다. 기부금은 호스피스 환자들을 위해 공기청정기 구입에 사용되었습니다. 김산호님의 나눔과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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